프랑스 대학에서는 졸업식과 학위수여식이 생략되어 미국 혹은 한국교육제도에 익숙한 외국학생들은 학위장이 우편으로 배달되는 순간 일종의 박탈감마저 느낄 수 있다. 프랑스대학자율화 이후 대학가에 변화된 모습이 있다면, 바로 학위수여식을 성대하게 치르는 대학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파리 5대학(데카르트) 약대의 경우, 지난 2010년 1월 검정 학위복과 학사모를 차려입은 졸업생들이 재학생들의 밴드연주가 곁들인 경쾌하면서도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화려하게 학위수여식을 갖었다. 2009년에 이어 두 번째로 치르는 소위 미국식 졸업행사이다.
오늘날 프랑스 대학도 학위수여식이라는 격식 차린 행사를 필요로 하는 것은 대학발전을 위해 졸업생들과 학맥, 인맥을 다지는 중요한 순간이라고 인식한 때문이다. 학위수여식장에는 학부형과 친지들뿐만 아니라 사회에 영향력을 지닌 선배들이 초대되며, 이 기회에 대학은 기업체들과 자매결연을 맺기도 한다.
최근 경제전문지 Challenges는 인명사전 Who's Who에 수록된 엘리트들을 기조로, 프랑스를 움직이는 명문대학들을 기획특집으로 다루었다. 세계화에 발맞추어 지구촌 곳곳에 뿌리를 내리는 졸업생들과 인맥, 학맥을 중요시 여기는 명문대로서 1872년에 설립된 시앙스포(Science-Po)의 경우가 소개되었다. 경제전문지에 의하면 시앙스포는 졸업생 8,200명이 동문회에 가입했으며, 1,000개 기업체를 비롯하여 15개 헤드헌팅 전문업체와 밀접한 연결을 맺고있다. 현재 재학생은 총 8,590명, 이들 중 40%은 외국인 학생이다. 지난 2년에 걸쳐 졸업생 30%가 외국에 취업했다. 시앙스포는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졸업생들의 재정지원으로 년 5백만 유로를 확보하고 있다.
Challenges의 통계자료를 보자면, Who's Who 2011년판에 졸업생 3,400명이 수록된 시앙스포가 숫자상으로는 가장 많은 인재를 사회에 배출했다. 대표적인 출신은 유럽통화금융정책을 지휘하는 쟝-클로드 트리쉐 유럽중앙은행(BCE)총재. 참고로 집권당 UMP당수 쟝-프랑스와 코페와 개그우먼 루마노프가 시앙스포 동기동창생이라 화제가 되기도 했다.
프랑스주식지표 CAC40을 대변하는 40대 기업 CEO들을 비롯하여 재계와 정계의 중요인물들을 배출한 숫자를 기조로, 경제전문지 Challenges가 선정한 프랑스 명문대 순위는 다음과 같다. 특순위로 선정된 시앙스포를 제외한 12대 명문대학이다. 파리 9대학(도핀느) 경영대를 제외하고 모두 그랑제꼴이다.
▶ 1위. ENA(행정계)/ 1945년 설립. 총 5,600명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이들 중 2000년 인명사전 Who's Who에 1,279명, 현재는 1,847명이 수록되었다. 대표적인 출신은 정계에서 지스카르데스텡 전 대통령, 시라크 전 대통령, 2007년 PS당 대선후보 세골렌 루아이알, 프랑스와 올랑드 전 PS당수, 빌팽 전 수상, 재계는 프랑스텔레컴CEO 스테판 리샤르, BNP Paribas은행장 미셀 페브로, 소시에테제네랄 은행CEO 프레데릭 우데아. 현재 3,300명 레나 출신이 동문회에 가입했으며 각종 클럽과 사이트를 통해 인맥과 학맥을 관리하고 있다.
▶ 2위. POLYTECHNIQUE(이공계)/ 1794년 설립. 1,368명 엘리트들이 사회에서 활동, 2000년도에 비하여 71명이 늘어난 숫자이다. 알스톰CEO 파트릭 크롱, Vinci그룹CEO 쟈비에 위아르, 푸조자동차 관리부CEO 필립 바렝, 현재 프랑스 제1위 부호인 베르나르 아르노 LVMH총수 등이 포함. 13,400명 졸업생이 동문회에 가입했다.
▶ 3위. HEC Paris(상경계)/ 1881년 설립. 2000년에는 721명, 현역 엘리트는 1,168명.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FMI총재, EDF의 앙리 프로글리오, AXA의 앙리 드 카스트, PPR그룹의 프랑스와-앙리 피노 등이 포함.
▶ 4위. 파리 9대학(경영대)/ 1968년 설립. 파리 도핀느 경영대는 그랑제꼴 출신들에게 박사과정을 마련하여 독보적인 입지를 차지했다. 10년 전에는 190명, 현재 534명 엘리트들이 활동 중. 라코스트그룹의 크리스토프 쉬뉘, 보로레그룹의 야닉 보로레, 라가르데르그룹의 아르노 라가르데르 등이 포함. 현재 4,000명이 대학동문회에 가입.
▶ 5위. ESSEC(상경계)/ 1907년 설립. 10년 전 151명, 현재 450명 엘리트들이 현역으로 활동. 코카콜라 유럽본부CEO 도미니크 레이니쉬, 푸조자동차 경영부CEO 티에리 푸조, 생-고벵CEO 샤랑다르. 한편 생-고뱅은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으로 루이14세 시대에 창립. 현재 레색 출신 12,000명이 동문회에 가입했다.
▶ 6위. PONTS(Ecole des Ponts Paristech, 이공계)/ 1747년 설립. 해마다 870명 기술자를 사회에 배출하고 있다. 10년 전에는 445명, 현재 437명이 엘리트군단에 포함. 부이그그룹의 이브 가브리엘, 르노 자동차의 파트릭 페라타 등이 포함. 3,500명이 동문회가입.
▶ 7위. ESCP Europe(Ecole Supérieure de Commerce de Paris, 상경계)/ 1819년 창립. 2000년에는 213명. 현재 381명 엘리트들이 활동. 전 총리이자 상원의원 쟝-피에르 라파렝, 토탈CEO 크르스토프 드 마르즈리, 에르메스CEO 파트릭 토마스. 10,000명이 동문회가입.
▶ 8위. INSEAD(상경계)/ 1957년 설립. 10년 전에는 201명, 현재 378명이 현역 엘리트군단에 속한다. 갈르리라파이에트 그룹의 필립 우제, 로레알CEO 린드세 오웬-존스, 루이뷔통CEO 앙트완느 아르노. 39,200명 인세아드 출신이 동문회에 가입.
▶ 9위. ENS(Ecole Normale Supérieure, 인문사회계열)/ 1794년 설립. 2000년 202명, 현재 360명이 교육계를 비롯하여 사회각층에서 활동하고 있다. 졸업생 80%가량은 박사학위자이며, 일부 졸업생들은 레나, 폴리테크니크, HEC 등 그랑제꼴에 다시 진학하여 정계나 재계로 진출하고 있다. 대표적인 출신은 알렝 쥐페 현 국방부장관, 로랑 파비우스 전 총리. 카지노그룹의 나우리, AREVA의 로베르죵, SNCF의 달리바르. 현재 3,500명이 동문회에 가입.
▶ 10위. CENTRALE(Ecole Centrale de Paris,이공계)/ 1829년 설립. 10년 전에는 347명, 현재 318명이 엘리트군단에 포함. PMU CEO 필립 제르몽을 비롯하여 총 16,000명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현재 7,000명이 동문회에 가입.
▶ 11위. MINES(Mines Paristech, 이공계)/ 1783년 설립. 현재 272명이 엘리트로 활동. Rhodia그룹CEO 쟝-피에르 클라마디위 등 3,000명이 동문회에 가입.
▶ 12위. TELECOMS(Télécom Paristech이공계)/ 1878년 설립. 재학생은 700명. 10년 전에는 143명, 현재는 243명이 현역 엘리트로 활동. 비밴디그룹CEO 쟝-베르나르 레비는 X-TELECOMS 출신.
폴리테크니크를 약자로 줄여 X로 불리며, 이 그랑제꼴 출신자들 중에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은 다른 이공계 MINES, PONTS, TELECOMS, CENTRALE에 진학하여 학업의 완성도를 꾀하고 있다. 알스톰과 푸조자동차 CEO, 에어버스경영부장 파브리스 브레지에의 경우 X-MINES, Vinci그룹CEO은 X-PONTS 출신이다. 이처럼 40대 기업을 비롯한 대부분의 대기업 CEO들은 2개 이상의 복수 그랑제꼴 출신들. BNP 파리바 은행장 미셀 페브로의 경우는 레나와 폴리테크니크를 포함하여 3개 그랑제꼴에서 수학했다.
또한 레나 출신(Ernaque)이 되려면 먼저 다른 그랑제꼴을 거쳐야 한다. 지스카르데스텡 전 대통령은 폴리테크니크, 시라크 전 대통령과 빌팽 전 수상의 경우는 시앙스포를 거쳐 레나에 입학했다.
프 랑스를 움직이는 엘리트사회를 보자면 문턱 높은 사교클럽들을 통해서도 인맥을 관리한다. 고급사교클럽 Polo de Paris, Le Jockey, Le Siècle, L'Interallié, Le Travellers 등은 대기업 CEO들, 전.현직 장관들, 은행장 등 하이클래스들에게 문이 열려있다. 물론 회원가입조건은 무척 까다롭다. Polo de Paris의 경우 회원이 되려면 가입비 15,000유로, 정회원 2명의 추천을 받아 적어도 2년에서 5년은 대기해야 한다.
한편 엘리트들의 ‘성경책’으로 불려지는 Who's Who 2011년판은 금년 10월 21일자에 간행되었으며, 총 22,000명 인명이 실렸다. 은퇴와 사망으로 700명이 삭제되고 875명이 새로 추가되었다. 올해 추가된 인물들 중에는 카를라 브뤼니의 전 애인으로 유명한 철학교수 라파엘 에토벤, 테니스 선수 조-윌프리드 쑹가(Tsonga), eBay 프랑스 지사장 요안 뤼조(Ruso) 등이 포함되었다.
(자료출처, 경제전문주간지 Challenges 230호, 2010년 11월 첫 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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