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31일 월요일

5565세대, '마의 10년'을 견뎌라


‘10년 보릿고개를 어떻게 견뎌야 하나.’

중소기업 회사원인 이모(42)씨는 앞날을 생각하면 숨이 턱턱 막힌다. 조그만 회사에 다니다 보니 '정년퇴직'은 이상적인 구호일 뿐 50대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집안의 돈 들어갈 일은 앞으로 계속 늘어날 상황이라 한숨만 나온다. 이씨는 "늦게 결혼해 50대까지 일한다고 해도 아이들은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할 상황"이라며 "국민연금은 65세가 되어야 받는데, 50대 이후 소득이 끊어진다면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정년퇴임 평균 연령은 만 48.2세로 나타났다. 기업형태로 보면 공기업이 평균52.2세로 가장 높았고, 대기업 47.8세, 중소·벤처기업 47.3세, 외국계기업 47.2세 순이었다. 대다수 직장인이 50세 이전에 퇴직 위기를 느낀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위기의 50대'에게 사회 시스템은 희망의 동아줄이 되지 못한다. 현재 60세로 돼 있는 국민연금의 수급 연령이 2013년부터 5년마다 1년씩 늦춰져서 1969년 이후 출생자는 65세부터 수령할 수 있다.

체계적인 은퇴준비가 없다면 65세 연금을 수령하기 전까지 10년 이상 배를 굶주리는 '新 보릿고개'를 맞을 수 있다.



◆ '산 넘어 산' 일곱 개의 新 보릿고개

노후전문가들은 정년퇴직 나이인 55세부터 국민연금이 시작되는 65세까지의 10년을 '마(魔)의 10년'이라고 일컫는다.

'5565세대'가 되면 7개의 가파른 고비를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선 정년퇴직으로 직장에서의 소득이 끊기지만 공적연금은 받지 못하면서 '소득 리스크'에 처하게 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소득은 감소하는데 자녀와 관련된 지출은 증가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만혼(晩婚)으로 상당수 가정에선 자녀가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정년을 맞게 된다. 아울러 부모 부양에 대한 부담도 져야 한다. 김동엽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은 "과거에는 평균 수명이 짧아 은퇴 후에는 부양할 부모가 없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55~65세 은퇴자가 노인을 부양하는 '노노(老老) 부양'시대로 접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50대 중반 이후에는 건강 악화라는 고비도 만나게 된다. 60세를 전후하면 밥보다 약을 더 많이 먹게 되는 시기로 접어들면서 의료비 지출이 크게 늘어난다.

부채 압박도 더욱 커진다. 정년을 맞이해 명함이 없어지면 금융기관의 대출 상환 압박이 거세진다. 부부관계에도 위기가 찾아온다. '파자마맨'이 된 은퇴 남편은 아내와 사사건건 갈등을 빚기 쉽다. 이때부터는 자산의 중심도 변화한다. 자산을 쌓아가는 게 아니라 모아둔 자산을 꺼내 쓰는 단계가 된 것. 효과적으로 노후자금을 인출하는 전략이 요구된다. 김동엽 센터장은 "마(魔)의 10년을 맞아 조급한 마음에 섣부른 창업이나 투자로 노후자금을 갉아먹게 되면, 노년 빈곤층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경기도 일산 KINTEX에서 열린 '2011 대한민국소상공인 창업박람회'에 마련된 
고용노동부의 '찾아가는 퇴직연금 상담소'

◆ 노후 연착륙 작전명 '연금화'

소득공백기인 55~65세 시기를 어떻게 하면 잘 건너뛰고 노후 생활에 연착륙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개인연금과 퇴직연금 같은 노후 대비용 상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국민연금 수령시기까지 견디는 전략을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우재룡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은 "55세 이후 정년퇴직하게 되면 가능한 퇴직(연)금을 일시금으로 받지 말고 연금화하고, 개인연금과 펀드 등도 연금으로 전환해 매월 최소한의 기본적인 생활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개인 연금 주머니는 가능한 여러개로 나눠 관리하는 게 권장된다. 최은아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전임연구원은 "연금 주머니를 여러개 갖고 있으면 긴급한 상황에 일부를 헐어써도 다른 주머니가 빈틈을 보완해줄 수 있을 것"이라며 "재테크의 기본으로 통장 나누기를 하듯이 개인연금 등 연금도 촘촘하게 나눠 관리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55~65세 10년간의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매달 저축해야 하는 최소의 금액은 얼마일까. 60~65세부터 받게 되는 최소한의 생활자금 수준인 국민연금 수령액을 기준으로 잡는다면, 월 평균 77만원(2010년 말 기준)이다. 55~65세에 이 정도를 쓰려면 현재 가치로 약 8000만원(현재 가치)의 자금이 필요하다. 지금 30대라면 매달 32만원씩 55세까지 적립하면 만들 수 있다. 40대는 매달 50만원을 저축하면 된다(물가상승률 3%, 투자수익률 4%).

김동엽 센터장은 "노후 20~30년을 위한 10억원을 마련하라고 하면 대다수 사람들이 지레 포기하게 될 것"이라며 "당장 소득 공백기인 10년의 최소한의 준비부터 차근차근 임하는 것이 노후준비의 정석"이라고 말했다.

■ 체크리스트/ '55~65세 기간' 당신은 준비됐습니까?

1. 국민연금 외에 개인연금이나 퇴직연금을 갖고 있다
2. 퇴직할 때 주택담보대출을 상환할 여유자금이 있다
3. 자녀의 대학 등록금 마련을 위해 매달 일정금액을 저축하고 있다
4. 출퇴근할 때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5. 부모의 노후 생활비와 의료비 마련을 위해 별도의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6.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퇴직해도 곧바로 재취업할 수 있는 주특기가 있다
7. 본인과 가족의 의료비 마련을 위한 보험을 갖고 있다
8. 정년 후 취업을 위해 학교에 다니거나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
9. 회사에서 벗어나 별도의 동호회 또는 취미 활동을 하고 있다
10. 부부 각자가 자신의 명의로 된 국민연금이나 연금보험을 갖고 있다

☞ 자신에게 해당하는 문항을 체크해보면, '55~65세 기간'에 대한 준비 정도를 알 수 있다.
8개 이상 : 이미 노후전문가! 본인의 방식대로 차근차근 준비.
5~8개 : 조금 더 보완 필요.
3~5개 : 적극적인 준비 필요.
3개 미만 : 이 상태라면 노후에 빈곤층으로 전락할 위험 있다

<자료: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소득공백기 건너뛸 징검다리 '강제저축 3인방' 
소득공백기를 건너뛰려면 어떤 금융상품을 활용해 준비를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까. 전문가들은 강제성을 지닌 저축을 활용하는 것이 모범답안이라고 말한다. 김동엽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은 "강제저축 상품은 중간에 꺼내 쓰기 어려워 많은 사람들이 불편하다고 말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돈을 모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말했다.

연금저축, 퇴직연금, 비과세 연금보험이 그러한 대표적인 '강제저축 3인방'이다.

① 연금저축
대표적인 소득공제 금융상품은 연금저축은 연 400만원까지 소득공제 혜택이 주어진다. 단 이러한 혜택을 누리려면 10년 이상 불입해야 한다. 중도에 해지하면 그동안 받았던 공제혜택을 토해내게 된다. 400만원 한도를 꽉 채워 공제 받으려면 매월 34만원 가량 불입하면 된다.

② 연금보험
연금보험은 10년 이상 불입하면 불입액 전부를 비과세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연금보험은 중도에 해지하면 원금 손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강제 저축을 하게 되는 효과도 있다. 변액연금으로 해외펀드에 투자하는 경우 세제 효과는 더욱 커진다. 우재룡 소장은 "일반 펀드로 해외에 투자하면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반면, 변액연금보험으로 해외펀드에 투자하면 비과세 혜택과 강제 저축이라는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③ 퇴직연금
퇴직연금은 매월 급여에서 일정액을 강제로 떼어 불입하기 때문에 은퇴 이후를 위한 중요한 강제 저축수단이 된다. 또한 내년부터는 55세 이전에 퇴직하는 경우 개인퇴직연금 가입이 의무화돼 직장을 옮겨도 중단 없이 퇴직급여 적립이 가능하다.

연금저축 납입 금액이 미미하다면 퇴직연금 추가납입을 통해 소득공제 혜택을 늘릴 수도 있다. 연금저축과 퇴직연금을 합산해 연간 400만원까지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서민 자영업자라면 ‘노란우산공제’



직장인처럼 퇴직(연)금을 받지 못하는 자영업자라면 별도의 은퇴자금을 쌓는 것이 필수적이다. 대표적인 것이 중소기업중앙회가 정부로부터 위탁·지원 받아 운영하는 노란우산공제다. 이 상품을 잘 활용하면 소기업, 소상공인의 폐업과 노령에 따른 생계위협에 효과적으로 대비할 수 있다.

납입원금 전액이 적립되고 그에 대해 복리이자를 적용하기 때문에 폐업 시 일시금 또는 분할금의 형태로 목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 또한 연 300만원까지 소득공제가 가능해 연금저축에 가입했다고 하더라도 최대 700만원까지 소득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압류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이 강점이다. 법에 의해 압류가 금지돼 있다. 강성갑 희망재무설계 컨설팅 팀장은 "노란우산공제는 회사가 문을 닫아도 차압이 되지 않아 생활안정과 사업 재기를 위한 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어 서민 자영업자에게 유용하다"고 말했다.

무료 보험 혜택도 있다. 사망 및 후유장애 발생시 최고 월부금액의 150배까지 보험금이 지급되며, 보험료는 중소기업중앙회가 부담한다. 자세한 가입 안내는 홈페이지(www.8899.or.kr/servlets/index)를 참조하면 된다.

슬픈 이카루스 LG, 추락의 끝은 어디인가

[이데일리 김일문 기자] 이카루스는 어리석음과 과욕을 상징하는 그리스 신화속 인물이다. 왕비의 부정을 도왔다는 이유로 미노스왕에게 미움을 산 아버지와 함께 감옥에 갇혔는데, 새의 깃털과 밀납으로 날개를 만들어 탈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이카루스는 새처럼 나는 것이 신기한 나머지 너무 높이 날지 말라는 아버지의 충고를 잊었고, 태양에 가까워지자 날개를 붙인 밀랍이 녹아 바다에 빠져 죽게 된다.

이카루스의 추락처럼 LG전자의 등급 강등은 어쩌면 예견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정확히 1년전 S&P가 LG전자의 등급 전망을 낮출 때부터 실제 등급 하향이 단행될 것이라는 공포가 조금씩 엄습해왔고, 결국 우려는 현실이 되고야 말았다.

문제는 추락의 속도와 기간이다. 이카루스가 감옥을 떠나 자유를 향해 날았지만 하늘을 품기에는 날개의 힘이 턱없이 미약했듯이 LG전자에 대한 리스크는 단순히 부진한 휴대폰 사업의 개선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오히려 LG전자 휴대폰 사업 부진은 표면에 드러난 결과 중 하나일 뿐 그룹의 총체적인 경영 전략과 전술을 새로 짜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불과 2년전까지만 하더라도 LG전자의 위상이 지금과 같이 떨어지리라고는 상상조차하기 힘들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LG전자는 연 평균 13.6%의 매출 성장세를 나타냈고, 2006년 2.5%였던 영업이익률은 2009년에 6%로 오르는 등 그야말로 잘 나갔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어닝서프라이즈의 중심에는 휴대폰 사업이 있었다. LG전자 MC사업부는 같은 기간 연평균 23%가 넘는 매출 성장률을 기록했고, 수익성 역시 9%에 육박할 정도로 알짜 사업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줬다.

하지만 수익 개선에 기여한 MC사업부는 국내 스마트폰의 보급과 경쟁이 본격화 된 2010년 들어 날개가 완전히 꺾여버렸다. 영업이익률은 곤두박질쳤고, 회사 전체 수익성 악화의 장본인이 돼 버렸다. LG전자의 MC사업부가 불과 1년사이 회사를 이끌어나가는 핵심 부서에서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이유는 이미 알려졌다시피 스마트폰 시장의 대응 능력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 동안 LG전자 휴대폰이 소비자들의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배경은 경쟁업체들이 넘볼 수 없는 기술력 보다는 디자인과 마케팅 능력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기술이 뒷받침 되지 않은 상황에서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환경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LG전자는 주로 초콜릿폰, 블랙라벨 등으로 대변되는 독특한 디자인의 제품으로 승부를 걸어왔지만 스마트폰 시대에는 디자인 차별화가 불가능한데다 삼성전자의 아몰레드, 애플의 어플리케이션 등 경쟁사에 대항할 만한 확실한 병기(兵器)를 찾기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향후 전망도 밝지 않다. 스마트폰의 출발선상에서 완전히 뒤처져 멀찌감치 떨어진 LG전자가 하루아침에 경쟁사들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기도 힘들다는 것이 그 이유다. 시장에서는 LG전자가 올해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한 겨울을 맞게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폰 실적이 단기간에 개선되기 힘든 상황에서 기존 범용폰의 약발도 떨어져서 3분기와 4분기 수익 뿐만 아니라 마켓쉐어 역시 더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고 설명했다.

Again 2000년…LG정보통신의 추억 

휴대폰 사업의 부진이 LG전자의 신용등급 하락의 촉매제가 된 것은 확실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취약점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경쟁보다는 인화(人和)를 강조하는 LG그룹의 오너 마인드, 패배를 두려워하는 ‘2등주의’ 경영 전략이 불러온 결과라는 지적이다. 한 크레딧 애널리스트는 “그 동안 LG전자는 경쟁사 제품에 대한 벤치마크로 성장해 왔다”며“이 같은 ‘2등주의’는 선발 주자의 강점은 그대로 살리되 단점을 보완함으로써 보다 나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메리트가 있지만 시장을 주도할 혁신적이고 일관된 철학이 없다는 점은 LG전자의 가장 치명적인 한계”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크레딧 애널리스트는 LG전자를 중심으로 회자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이 10년 전을 떠올리게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LG전자의 휴대폰 사업은 최근 10년 동안 5년 정도를 주기로 하락과 상승의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며 “지난 2000년 LG정보통신이 LG전자에 흡수합병되면서 2000년대 중반까지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2010년까지 나아지는 모습을 나타낸 바 있고, 최근들어 또 다시 꺾이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LG정보통신은 PCS 브랜드 ‘사이언’의 제조회사로 경영 사정이 여의치 않자 지난 2000년 모회사인 LG전자에 흡수합병됐다. 이 애널리스트는 “LG전자가 이같은 부침(浮沈)을 보이는 이유는 트렌드를 잘 따라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구체적이고 치밀한 전략을 세우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내부적인 자성의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얼마 전 LG전자를 퇴사한 한 연구원이 인터넷에 개재한 글은 회사의 사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있다. LG전자 MC사업부에 몸담았었다고 본인을 소개한 전직 연구원은 “3~4개월씩 들어가는 합숙 휴대폰 개발을 마치면 개발자들이 마구 퇴사한다”며 “개발자들이 나가버려 휴대폰을 팔고 난 뒤 사후 지원을 제대로 못하는 게 LG전자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 “과거에는 회사에서 타사 제품을 쓰지 못하게 해 다른 회사 제품이 얼마나 앞서있고 우월한지 알지도 못했다”며 “눈앞만 보고 이 같은 목소리를 무시하면 LG전자는 앞으로 2년, 3년씩 뒤쳐질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전자 계열사로 옮겨붙는 공포 

더 큰 문제는 LG전자의 등급 하락이 사정이 좋지 않은 다른 전자 계열사인 LG디스플레이와 LG이노텍으로 전이되면서 그룹 전체의 크레딧 리스크로 확대, 발전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LG전자에 대한 매출이 70%에 육박할 정도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LG이노텍에게 캡티브 마켓의 불황은 곧 수익 악화와 재무구조 악화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LG이노텍의 실적은 작년 말을 기점으로 빠르게 나빠지고 있다. 작년 4분기 360억원의 영업손실과 196억원의 당기 순손실을 각각 기록한 바 있는 LG이노텍은 올 상반기 현재까지 영업손실 14억원, 순손실 165억원으로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장사가 제대로 안되니 재무구조 역시 나아질 리 없다. 빚은 늘고, 현금은 줄면서 같은 기간 부채비율과 차입금 의존도 상승이 지속되고 있다.

LG디스플레이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최근 LG디스플레이 회사채 발행과정에서 나타난 에피소드는 LG그룹 전자계열사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담고 있다. 총 3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위해 시장 수요 조사를 진행했던 LG디스플레이는 생각보다 수요처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금리를 높여줘도 선뜻 투자에 나서겠다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태핑 기간이 늘어지면서 다급해진 LG디스플레이는 금리와 발행규모를 조정한 뒤에야 어렵사리 발행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AA급 회사채 발행이 이토록 난항을 겪은 것은 흔치 않은 일. LG전자의 등급 강등이 현실화 되면서 크레딧 리스크가 고스란히 LG디스플레이로 옮겨 붙어버린 셈이다. 한 크레딧 애널리스트는 “LG디스플레이의 경우 단순한 업황 사이클상으로 겪게 되는 침체라기 보다는 수요의 구조적 변동을 포함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그 낙폭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LG전자의 수요 비중이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최대 주주라는 점에서 등급 강등의 여파는 불가피 할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룹에 발목잡힌 LG화학 

그룹 리스크에 발목을 잡힌 또다른 회사는 LG화학이다. LG화학은 최근 호남석유화학의 등급 상향이 단행되면서 같은 화학업종 내 등급 재조정 대상으로 꼽혔지만 LG전자를 필두로 LG그룹 계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등급 상향이 무산된 케이스다. 작년 말을 기준으로 LG화학의 매출 규모는 19조4700억원. EBITDA는 3조5000억원에 달한다. 반면 호남석유화학의 경우 매출은 12조4000억원, EBITDA는 1조5000억원 수준이다.

따라서 얼마전 등급이 `AA+`로 오른 호남석유화학과 같은 등급에 머무르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마지막 등급 상향 시점이었던 지난 2009년 3월 이후 수익성이 나아지고, 재무구조 개선은 물론 회사의 규모도 커진만큼 시기적으로도 충분히 등급이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시장은 예상했다. 하지만 증폭되고 있는 계열 리스크는 LG화학의 등급 상향 논거를 퇴색시키고 있다는 설명이다.

물론 LG화학이 전자 계열사들의 크레딧 리스크에 영향을 받을만한 요인은 상대적으로 적다. LG이노텍처럼 LG전자쪽 매출이 절대적인 경우 전방 산업 악화에 직격탄을 맞는다는 점에서 계열 리스크의 발생 가능성이 크지만 LG화학의 경우 전체 매출에서 전자 계열의 비중은 미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G화학의 등급 상향이 이뤄지기 힘든 이유는 등급 평정의 한 요건인 그룹의 계열 지원 가능성 항목 때문이다. 지금은 주춤하고 있지만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등 전자 계열이 LG그룹의 주축이었던 만큼 이들의 리스크 확대는 결국 LG화학을 비롯한 다른 계열사로 전이될 수 밖에 없다는 논리다. 한 크레딧 애널리스트는 “현재의 흐름으로 봤을 때 LG그룹내 계열 지원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1%의 가능성도 등급에 반영해야 한다는 점은 LG화학의 등급 상향이 어려운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제5호 마켓in`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제5호 마켓in은 2011년 11월1일자로 발간됐습니다. 책자가 필요하신 분은 문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의 : 02-3772-0344, bond@edaily.co.kr]XML

2011년 10월 27일 목요일

다 잃고 길바닥에 누우면 경찰이라도 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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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진은 “시골길을 가도 잘 닦여진 길, 다녔던 길 보다 험한 길, 몰랐던 길을 찾아가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김국진은 수많은 실패를 하면서, 수없이 둘러서 여기까지 왔다. “인생에선 말이죠. 안전한 길만 찾다 보면 갈 데가 없어요. 안전만 추구하는 게 가장 불안전한 삶이에요. 실패도 없고 성공도 없는, 그러다 서서히 죽어가는 인생말이죠.” /사진=임성균기자 tjdrbs23@ 
구강구조가 특이한 남자, 혀 짧은 소리로 ‘맹맹거리는’ 남자,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가녀린 남자, 그러나 가왕(歌王) 조용필도 제치고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50년간 가장 사랑 받는 연예인’ 1위로 뽑혔던 남자, 개그맨 김국진(46).

‘밤새지 마란 말이야’ ‘나 소화 다 됐어요’ ‘짜장면 시키신 분’ ‘오 마이 갓’ 등 그의 입에서 나오던 혀 짧은 소리가 아직도 시청자들 귀 끝에 맹맹거리는 대박 유행어의 주인공. 하지만 골프, 사업, 그리고 결혼 등에서 실패를 연속하며 5년간 TV에서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던 남자. 그러다 4년 전 재기해 후배들 틈새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남자, 김국진을 만났다. 

화려했던 성공담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의 처절했던 실패론(失敗論)을 듣기 위해서 였다. 실패에 대한 김국진의 철학이 힘든 사람들에겐 유명인사의 그 어떤 성공담보다 더 강력한 위로와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특히나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청춘들에겐 말이다. 

“성공은 실패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딛고 일어나는 것” 
질풍노도의 신인시절을 거치고 잠시 미국을 경험한 김국진은 귀국 후 토크쇼를 맡았지만 참담한 실패를 맛본다. 하지만 ‘테마게임’을 시작으로 진짜 전성기(1997~2001년)를 맞는데 이때 그의 인기는 지금 유재석의 딱 10배였다. ‘국찐이빵’은 하루 60만개가 팔리면서 쓰러져가던 기업도 살려냈다. 그때 돈으로 일주일에 1억원씩 벌던 시절이다. 그러나 여기까지. 이후 결혼과 이혼, 이를 둘러싼 수많은 루머, 방송중단, 15번 연속 골프 프로테스트 탈락, 골프의류사업 실패…. 언제 끝날지 모를 내리막이었다. 그러다 ‘라디오스타’로 재기하면서 지금까지 왔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바닥을 찍고 다시 움직이려는 딱 그 위치’에 김국진은 서있다. 

대한민국 안방을 초토화시켰던 최고스타가 돼보기도 했고, 바닥까지 떨어져보기도 했던 김국진. 성공과 실패의 엄청난 진폭을 경험해온 김국진. 실패와 성공은 과연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인과관계에요. 실패를 하니깐 성공도 할 수 있는 거에요. 왜냐고요? 최선을 다해 움직여서 얻어진 실패는 자신도 깜짝 놀라게 만드는 힘이 있거든요. 그래서 실패를 해도 어떻게 실패했냐가 중요하죠. ‘뭐 해볼까? 어, 안됐네!’ 이런 실패는 백날 해도 소용없어요. 실패를 하더라도 계획을 철저히 세우고 최선을 다해서 실패해야 하는 거에요. 성공은 실패를 안 하는 게 아니라, 실패를 딛고 일어나는 것이에요.” 

최선을 다해 움직여서 얻어진 실패라! 귀국후 토크쇼를 맡았을 때 그는 미국서 가져온 아이디어를 다 쏟아 부었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했으니 엄청나게 성공할 줄 알았죠. 그런데 50분짜리 프로그램을 5분짜리 ‘개콘’처럼 준비했더라고요. 이런 실패가 아니었다면 전성기? 없었을 거에요.” 

날개 없이 추락할 당시 김국진은 ‘미친듯이’ 골프를 쳤다. “철저히 깨져보고 싶더라고요. 오죽하면 열다섯번씩 (골프 프로테스트에) 도전했겠습니까. 깨지고 깨져보니깐 어떤 믿음이 생기더라고요. 실패 자체로만 끝나지 않을 거라고, 뭔가 얻는 게 있을 거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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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딪혀서 멍이라도 들어봐라” 
기자는 또렷이 기억한다. 개그맨, MC로 승승장구하던 어느날 밤, TV화면에 어색하고 어눌하고 침울한 얼굴의 농촌총각으로 김국진이 등장한 장면을. 농촌총각은 연변처녀의 사랑을 외면하고 허영이 가득한 ‘꽃뱀’에게 빠져 전 재산을 날렸다. 기자의 기억으로는 당시 그 드라마에는 ‘개그맨 김국진’은 없었다. 불안하고 쓸쓸한, 한 어리석은 농촌총각만 있었다. 시청자를 자지러지게 하던 개그본능은 철저히 숨기고 어떻게 그렇게 어리어리한 농촌총각으로 빙의가 될 수 있는지, 기자는 ‘짠’했다. 

“전 연기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재능도 없고 자신도 없었죠. 대본 리딩을 하면 제가 생각해도 발음이 안 되는 거에요. 드라마에서 어디 게임이나 되는 얼굴인가요. 표정이 다양하지도 않고요. 그런데 제가 드라마를 10편 정도 했습니다. 드라마를 하면서야 ‘내가 드라마를 할 수 없다’고 딱 선을 그어놓고 있었다는 걸 알았죠. 개그는 ‘웃음’이 아니고 ‘인생’인데 말이죠. 재미있어서 나오는 웃음이 아니라 슬퍼서, 내 이야기 같아서 나오는 웃음이 진짜인데 말이죠.”

그래서 김국진은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이것이 나의 가장 큰 적”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곳에서 진짜 내 길을 찾을 수가 있어요. ‘한번 해보고는 싶다’는 생각만 든다면 일단 부딪혀보라는 거죠. 부딪혀서 멍이라도 들어보라는 거죠. 몸에 든 멍이 사라질 즈음엔 더 큰 게 가슴에 새겨질 거라는 거죠. 그게 진짜 자기 것이죠.” 

그의 얘기를 듣고 있으니 또 한번 ‘짠’했다. 아직도 많은 멍자국이 그에게 남아있을 텐데, 후배들에게 ‘치이면서’ 새로 멍들기도 할 텐데. 하지만 김국진이 멍을 다 털어낼 즈음엔 신나게 롤러코스터를 타고 올라가던 그 때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다 잃고 길바닥에 누우면 경찰이라도 깨워준다” 
김국진을 만나기 전 그를 잘 안다는 연예부 기자들로부터 먼저 김국진의 뒤를 캤다. 김국진에게는 ‘할머니 콤플렉스’가 있다고 했다. 길가다 물건 팔고 있는 할머니, 고물을 실은 수레를 끌고 가는 할머니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물건을 사주든지, 수레라도 밀어준다는 것이다. 

“그렇게 고생하시는 할머니들을 보면 왠지 (이런 사회에 대해) 화가 좀 나더라고요. 저라도 잘해드리고 싶고, 그렇죠.” 그래서인지 김국진의 실패론에는 사람 냄새가 났다. 

“제가 방송에서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롤러코스터를 타고 급강하해도 너무 걱정말라고, 안전바가 있다고 말이죠. 젊은 친구들이 두렵고 불안해서 뭘 못하잖아요. 이거 해보다 망하면 인생 끝일 것 같고, 그래서 겁나서 못하잖아요. 그런데 보세요. 실패해도 부모형제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어요. 얼굴도 모르고 낯설어도 좋은 사람들이 있어요. 하다못해 길바닥에 쓰러져서 잠들어보세요. 경찰이라도 깨워주고 가요. 다 포기하고 처박혀있고 싶어도, 그거 마음대로 못해요. 이런 게 다 안전바에요.”

그래서 김국진은 “무서워하지 말고 그냥 한번 부딪혀보라”고 말했다. “두려워서 못하면 아무것도 못해요. 실패도 않겠지만, 죽을 때까지 성공도 못하는 거에요. 우리 사회는 안전지대가 별로 없거든요. 안전, 안전, 하다보면 진짜 갈 데가 없어져요. 안전만 추구하는 게 더 불안전한 삶이 되는 거에요. 왜 많이 배우신 교수님, 또 오피니언 리더라는 분들, 이런 기성세대들이 젊은이들 걱정 많이 하잖아요. 그냥 겉치레로 그러는 게 아니에요. 진심이에요. 저도 걱정 많이 하고요. 걱정하지 말고, 무서워하지 말고, 부딪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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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닭 한 마리도 그냥 보지 마라” 
기자는 김국진에게 청년들이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실패론을 주문해봤다. 부딪혀 실패해서 배우더라도 요령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는 대뜸 닭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한번은 무뚝뚝한 사람에게 ‘꿈꾸는 닭’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우스개 소리죠. ‘내가 닭도 꿈을 꾸는지 실험을 했다. 닭에게 실험을 해야 한다고, 자라고 해도 닭이 안 자더라. 자꾸 자라고 다그치니깐 닭이 화가 나서 스스로 털을 뽑고 양념을 몸에 바르더니 열 받아 못살겠다면서 양념통닭집으로 걸어가더라’ 뭐 이런 개그를 했는데 그 무뚝뚝한 사람이 그러더라고요. ‘닭이 어떻게 자기 털을 뽑느냐’고요. 말문이 딱 막혔죠. 유머가 안 통하는 사람이 아니라, 참 무심한 사람이구나 생각했죠.

닭은 닭일 뿐이라 생각한다는 거죠. 제 얘기는 어느 날 지나가는 닭을 봐도 그냥 보지 말라는 거에요. 절 보세요. 개그의 소재를 찾잖아요. 다 연결돼 있어요. 이 길과 저 길이 전혀 상관없는 것 같죠? 사실은 다 연결돼 있어요. 뭐든지 두드려보면 길을 찾을 수 있어요. 처음엔 아닌 것 같아도 다 연결돼 있기 때문에 결국은 길을 찾는 거에요.”

김국진이 청년들에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었다. 작은 것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 그 속에서 아이디어를 구하고, 길을 찾는 것. 

김국진은 인터뷰 내내 진지했다. 화려했던 전성기를 회상할 때보다, 완전 나가떨어졌던 시절을 이야기할 때 눈이 더 반짝거렸다. 김국진을 다시 스타의 대열 속에서 만날 수 있도록 한, 그의 밑천도 숱한 실패의 시간에서 나온 듯했다. 김국진의 말처럼, 만난 적도 없는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다 내편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실패해도 내 걱정을 해줄 많은 사람들, 그 속에 김국진도 있다고 생각해본다면 인생 한번 두드려볼 만하지 않을까.

이현수 최우영기자 hyde@

2011년 10월 25일 화요일

한 청년의 분신이 전세계를 일깨웠다 - 무하마드 부아지지

23일 튀니지에서는 '아랍의 봄' 이후 첫 민주선거가 치러졌다. 23년간 독재 정치를 펴오던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을 축출한 튀니지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은 90%의 높은 투표율로 나타났다. 올 한해를 뒤흔든 중동의 민주화 운동의 시발점이었던 튀니지의 선거 소식에 국제 사회가 주목하고 있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민주화 운동이 중동 지역에 들불처럼 번지고, 비슷한 시기에 유럽에서 경기 침체에 분노한 청년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지난달에는 세계 경제의 핵심이자 위기의 근원이었던 미국의 월스트리트에서도 시위가 시작돼 다시 전 세계의 동조시위로 번졌다. 전 세계의 시위대가 현 상황에 대한 분노와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했다는 점에서 이들 시위를 각각 별개로 놓고 볼 수는 없다.

미국의 작가 레베카 솔니트는 18일 미국의 정치평론사이트 '톰디스패치'에 기고한 글에서 2011년을 휩쓴 시위 열풍에 처음 방아쇠를 당겼던 튀니지의 한 청년의 죽음에 주목했다. 모하메드 부아지지라는 이름을 가진 이 청년은 대학 졸업 이후 직장을 구하지 못해 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다가 경찰의 단속에 항의해 분신, 올해 초 세상을 떠났고 튀니지 국민들의 분노를 일거에 폭발시킨 계기가 됐다.

부아지지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에서 솔니트는 현재 중동과 유럽, 미국, 심지어 학생들의 공교육 개혁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칠레에 이르기까지 '99%'를 대변하는 일반 시민들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으며 이를 촉발시킨 것은 결국 그의 죽음부터였다고 전했다.

솔니트는 사자(死者)가 된 부아지지에게 시위대가 무엇에 분노하고 있고 또 시위가 어떻게 퍼져나가고 있는지 전하면서 이 시위가 어떤 미래를 맞을지는 불명확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볼 수 없었던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고 위로했다.

다음은 이 글의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원문 보기)

▲ 지난 1월 튀니지에서 벌어진 민주화 시위 장면. ⓒAP=연합뉴스

희망을 점령하는 것에 대한 편지

격동의 2011년이 시작된 지 넷째 날에 하늘로 간 청년 모하메드 부아지지에게.

나는 당신에게 이 놀라운 1년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절망의 힘에 대해, 희망의 크기에 대해, 그리고 시민사회의 연대에 대해.

당신의 삶은 짧았지만 죽음의 의미는 거대했고 '아랍의 봄'을 통해 많은 독재자들이 몰락하게 하는 촉매가 되었다는 사실을 당신이 알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미국의 몰락'을 보고 있습니다. 미국의 시민 사회가 갑자기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우리는 지금 당신이 가난과 절망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온몸에 불을 살랐을 때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미래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뉴욕에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시위가 벌어지기 정확히 9개월 전인 2010년 12월 17일은 당신이 분신을 한 날입니다. 당신이 하늘나라로 간 2주 후부터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힘없고 희망 없는 현실에 절망하며 몸에 불을 붙인 당신이지만, 하나의 작은 희망을 놓고 떠났습니다. 넉넉한 수입을 올리거나 경찰에게 공정한 대우를 받을 힘은 없었지만 당신은 저항할 힘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희망은 많은 이들의 꿈이었으며 99%의 꿈이었기 때문에 힘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튀니지인들이 들고 일어나 정권을 전복시켰고 이집트, 바레인, 시리아, 예멘, 리비아로 불이 옮겨 붙었습니다. 튀니지의 벤 알리, 이집트의 무바라크, 리비아의 카다피가 없는 중동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습니까? 우리는 지금 그 상상할 수 없었던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곳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일본은 3월 11일 지진과 쓰나미로 말 그대로 크게 요동쳤고, 자신들의 가치와 우선순위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됐습니다. 중국 역시 흔들리고 있고, 중산층과 배고픈 이들의 불만이 얼마나 오랫동안 관리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입니다. 인도의 미래는 누가 알겠습니까. 깜짝 놀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여성들에게 소소한 권리를 주기도 했습니다.

시리아 사람들은 군대가 무서워 집에 돌아갈 수 없습니다. 10만 명 이상의 이탈리아 사람들은 정부의 긴축 정책에 저항하고 있습니다. 그리스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내가 이스라엘을 빼놨나요? 거기선 경제적 고통에 항의하는 엄청난 시위가 올 여름 내내, 그리고 가을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모든 움직임은 경제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스에서는 거대한 시위와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2008년 경제를 망친 은행을 구제하는 문제를 두고 계속 싸우고 있고 정치인들에게 달걀을 던지고 있습니다. 아이슬란드의 전직 총리는 아마도 글로벌 금융 붕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처음으로 법적인 단죄를 받는 국가 원수가 될 것입니다. 스페인의 젊은이들은 5월 15일 저항을 시작했습니다.

특이한 점은, 이처럼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봉기에서 시위대는 어떤 정당이나 하나의 입장만을 얘기하지 않고 보다 더 나은 세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존중, 실질적인 민주주의, 희망과 가능성, 그리고 자신들의 경제적인 기반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스페인에서 기업들과 1%의 이익에 자신들의 미래를 저당 잡힌 젊은이들은 스스로를 '분노한 사람들'(Indignados)라고 부르며 지난 여름을 광장에서 보냈습니다. 이집트 혁명의 성지 타르히르(해방) 광장 점령 시위와 같은 '마드리드를 점령하라' 시위는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에 앞서 벌어진 것들입니다.

높은 교육비와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에 분노하고 있는 칠레의 학생들은 5월부터 시위를 벌여오고 있고, 참여 인원은 15만 명 이상입니다. 콜롬비아에서도 지난주 4만 명의 학생들이 '교육 개혁'을 외치며 거리 행진을 벌였습니다. 영국에서는 8월 런던에 살고 있는 흑인 청년 마크 더간이 경찰의 발포로 숨진데 대한 항의의 뜻으로 젊은이들이 런던, 버밍햄 등의 거리로 나와 소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영국의 젊은이들은 지난 겨울학자금 인상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멕시코에서는 좌파 시인 하비에르 시실리아가 갱단에 의해 자신의 아들을 잃고 정부의 마약정책에 반대하는, 아름다운 비폭력 시위를 벌였습니다.

미국 위스콘신 주에서도 지난 겨울 시민들이 공무원들의 단체교섭권을 지키기 위해 주 의회 청사를 몇 주간 점거했었습니다. 이집트인들과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그들에게 피자를 보내주기도 했어요. 우리는 그들의 연대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장면을 모두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점령 운동은 월스트리트에서 다른 곳으로 번져 갔습니다. 북미 각지에서 수백 건의 점령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 월스트리트 시위 장면. ⓒAP=연합뉴스

우리가 99%다

'우리가 99%다'는 점령 운동의 구호입니다. 지난 여름 '우리가 바로 99%'라고 써 있는 전단이 배포되어 8월 9일 오후 7시 30분 뉴욕 맨해튼의 '아일랜드 기근 기념관'에서 총회(general assembly)를 열자고 제안했습니다. 9월 17일 시작된 월스트리트 시위를 논의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월스트리트와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아일랜드 기근 기념관은 1840년대 기근으로 숨진 100만 명의 아일랜드 소작농들을 기리는 곳입니다. 당시 아일랜드는 식량 수출국이었는데 특권층들이 수익을 모두 독차지했습니다. 따라서 그 기념관은 소수 특권층의 착취, 우리의 조상들을 이민으로 내모는 힘, 그리고 여전히 사람들을 농지와 집과 조국에서 몰아내는 힘을 상징합니다.

1840년대 아일랜드의 대기근은 식량 절대량의 부족이 아닌 분배의 문제에서 발생한 근대의 위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습니다. 미국은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이며 천연자원이나 간호사, 의사, 대학, 교사, 주택, 식량 등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따라서 미국 역시 분배의 위기입니다. 부유한 이들은 충분히 부유합니다만, '충분하다'는 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탐욕스럽습니다. 그들은 지난 30년간 우리 나머지들의 생존과 존엄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마저 약탈해 갔습니다. 따라서 아일랜드 기근 기념관은 월스트리트 시위를 시작하기에 가장 적절한 장소였을 것입니다.

대기근 시절 굶주림으로 죽어갔던 99%는, 그리고 금융 위기로 생계와 집을 잃은 99%는 부시 행정부와 그 정부가 만든 극단적인 민영화의 시대를 통해 떠받들어진 1%의 사람들에게 대응하기로 했습니다. 상위 1%는 지난 10년 이상의 시간 동안 미국 전체의 소득 성장의 65%를 가져갔고, 2010년에는 미국 전체 인구의 6.7%인 2050만 명이 4인 가족 당 1만1157달러(약 1268만 원) 이하의 돈으로 1년을 살았습니다.

8월 말 뉴욕에 사는 28세의 한 활동가가 '우리는 99%'라는 웹사이트를 열었고, 거기에는 매일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진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안전해지고 집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유혹해 결국 자신들을 빚더미에 앉게 한 교육을 받았고 또한 성실히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처하게 된 심각한 상황에 대해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트는 부의 재분배를 약간만 개선해도 해결될 수 있는 경제 상황에 대한 악몽과도 같은 이야기들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호사스런 생활을 원하는 게 아닙니다. 단지 19세기 물방아 기계 작업자들처럼 목숨을 버려야 할 정도로 일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일 뿐이고, 그들이 만약 병에 걸린다고 해도 모든 게 끝장나는 상황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들은 존중을 받고 생존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들의 말은 당신의 가슴을 찢을 것입니다.

26세의 나이에 저세상으로 간 부아지지 당신에게 최근 그 사이트에 올라온 글 중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나는 26살이다. 현재 13만4000달러(1억5229만1000원)의 빚이 있다. 14살부터 일하기 시작했고 스무 살이 넘어서부터는 풀타임으로 일했다. IT 업계에서 일하다가 지난 7월 해고됐다. 그래도 나는 운이 좋았다. 곧바로 새로운 일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임금은 삭감됐다. 방금 우리 아버지가 지난 주 해고됐다는 걸 알았다. 한 직장에 18년간 계셨다. 나는 강박신경증이란 병을 가지고 있는데, 치료를 받기 위해 오랜 시간 근무를 안 할 수 없다. 내가 일을 하지 않으면 주택 대출금(모기지)을 갚을 수 없고, 휴가를 내면 새롭게 잡은 일자리를 잃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99%다."

'우리는 99%'라고 말하는 이중 일부는 편향된 시각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젊은 IT 노동자의 편지는 매우 길어서 자신의 관점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습니다. 가난이 그렇게 만듭니다. 가난은 또 재능과 가능성, 교유의 목소리를 흐릿하게 하며 더 심해지면 당신을 굶주림과 비참함 속에서 사라지게 만들 것입니다. 가난은 험난했던 2011년 전 세계 사람들이 저항했던 시스템의 산물입니다. 결국 '아랍의 봄'은 경제적 저항이었습니다. 그곳의 모든 독재와 전제정치 역시 지배자와 다국적 기업 등 '1%'를 위한 이익만을 추구했습니다.

스페인 '분노하라' 시위에서는 "우리는 정치가와 은행가의 소유물이 아니라"라는 슬로건이 등장했습니다. 부아지지 당신과 같은 아름다운 젊은 세대들이 일어나 미국에 있는우리들까지 함께 하게 만들었습니다.

인간 확성기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 초기 비평가들은 시위대가 실질적인 요구사항을 제안해야 하는 로비 그룹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월스트리트 시위대들이 학자금 대출 면제와 같은 정부의 지원을 요구해야 한다고 확신했습니다. 시위대들이 품은 거대한 꿈을 작은 틀에 담으라는 말과 같았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그들은 이 운동이 속도를 내 지도부를 선출하고 누군가를 타깃으로 비판하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이 운동은 시민사회와 대중에 의해 촉발된 자발적 운동이고 구체적인 정책 요구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이 운동은 시위를 조직하고 진행하는데 총회라는 방식을 씁니다. 시위 참가자들은 권위자를 보려는 게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모여들고 있습니다. 큰 틀에서 민주주의의 부재 현상를 조롱하는 것보다 작은 틀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려 노력하는 것입니다.

시위대들의 총회는 모든 결정이 합의에 의해 이뤄지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뉴욕 경찰이 확성기 사용을 불허했기 때문에 총회에 모인 이들은 자신들의 입으로 논의되는 내용을 전달합니다. '인간 확성기'인 셈이죠. 많지 않은 어휘는 손짓으로 전달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방식들은 대규모 회의임에도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게 만듭니다.

한편으로 이 총회 방식은 '직접 민주주의'의 실현이기도 합니다. 누구도 당신에게 결정된 사항을 통보하지 않습니다. 스스로가 평등한 발언권을 가진 시민으로서 시민사회에 참가하는 순간 직접 민주주의를 체감하게 됩니다. 다르게 말하면 시위대들은 뭔가를 바라는 게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정보화 시대지만 그 총회는 어떤 기술도 확성기도 없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또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문자 메시지,이메일, 그리고 <점령당한 월스트리트저널>과 같은 신문과 온라인 사이트들은 이 소식을 전 세계로 퍼트립니다.

시위 참자가들은 제한 없이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임으로써 거의 우리 모두의 의견을 듣고 있습니다. 과로에 시달리며 학자금을 갚아 나갈 운명의 대학생, 돈이 없어 대학 문턱도 밟지 못한 청년, 더욱 열심히 일하지만 소득은 줄어들고 있는 노동자, 직업도 없고 일자리를 구할 가능성도 없는 많은 이들, 은행의 농간으로 집을 잃어버린 사람들, 의료보험 재정 악화로 영향 받게 될 모든 이들이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엄청난 분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종류의 희망이 있습니다. 이 시위가 4주가 넘게 지속되고 있고, 지난 15일 전 세계 1000여 개의 도시로 퍼져나갔다는 점입니다. 그 시위는 '99%'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위는 "두 번째로 조국을 위해 싸웠다. 적이 누구인지 안 게 처음이다"라는 한 전직 미 해병의 슬로건처럼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에는 기후변화 운동도 등장했습니다. 기후변화 운동을 막는 건 다른 모든 문제를 막는 것과 같습니다. 이를 가로막으려는 이들은 이 운동이 기업의 이윤을 떨어트릴 것이라면서 '분기 이익이 위험한 것도 아닌데 먼 미래를 걱정하지 말자'라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십수 년 전 시애틀에서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반세계화 운동이 성공적으로 벌어진 이후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라는 슬로건이 있었습니다. 전 이미 다른 세상이 왔다고 봤기에 이 말을 확신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뉴욕의 월스트리트 시위대의 유튜브 동영상에서 한 노인이 "우리는 모두가 중요하게 취급받는 사회를 위해 싸운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한 마디인가요! 어떤 요구가 이보다 더 명확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현 경제 시스템에서 사람이 가치가 없다는 것을 이보다 더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요?

ⓒAP=연합뉴스

'점령하라'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함께 점령하라(Occupy together). 뉴올리언스, 포틀랜드, 스톡턴, 보스턴, 라스크루케스, 미니애폴리스를 점령하라. 점령하라. 이 말은 선언이고 공식 견해이며, 입장입니다. 많은 이들에게, 특히 남성들에게 그들의 직업은 그들의 정체성입니다. 직장을 잃었을 때, 그들은 단지 실업자가 아니라 무의미한 존재가 됩니다. 점령하라 운동은 그들에게 새로운 직업을 제공합니다. 임금을 주지는 않지만 가치 있는 일입니다. "일자리(job)를 잃었고, 직업(occupation)을 찾았다"라는 시위대의 재치 있는 문구도 있습니다.(*occupation은 '점령'이라는 뜻과 '직업'이라는 뜻을 함께 갖고 있다. 편집자)

물론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하고 있다"라는 표현처럼 점령이란 단어에는 암울한 의미가 있습니다. 미국 공영라디오 <NPR> 방송조차도 주식시장의 등락이 오래전부터 '99%'의 삶의 질과 무관하지 않아왔다는 듯이 다우존스 주가 소식을 하루에 몇 번이나 보도합니다. 월스트리트는 마치 미국에 소속되지 않은 것처럼 우리를 오랫동안 점령해 왔습니다. 이제 월스트리트는 미국이 외국을 점령하듯 그 일부분이 점령당하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는 미국이 아닙니다. 아마 적국일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점령당했습니다. 미국 원주민(인디언)들이 40여 년 전 샌프란시스코 만에 있는 알카트라즈 섬을 18개월 동안 점령하고 원주민 운동을 일으켰던 방식으로요. 당신이 서 있을 곳을 정하고, 그곳에 있을 때 당신은 시민 사회의 일원으로써 또 다른 일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올해 5월 오하이오에서는 로빈 후드를 자처하는 이들이 체이스은행 본사에서 열린 주주총회에 등장했습니다. 이 40명의 로빈 후드들은 또 지난주 시카고에서 열린 국영 모기지은행 회의에도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압류 위기에 처한 주택들이 점령당하고 있습니다. 압류는 물론 사람들을 집이 없는 상태로 만듭니다.

역사적인 이 순간에서 점령은 우리 모두의 일이 될 것입니다.

혁명의 시작과 미래

당신의 절망이 희망을 낳았습니다. 누구도 미래를 모릅니다. 10개월 전 분신했을 당시 당신도 확실히 알지 못했고, 현재 우리 누구도 모릅니다. '미국의 가을'은 차치하고서라도 '아랍의 봄'이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 지를요. 이 운동은 갓난아기의 상태로 세상에 도달했습니다. 그 아이의 운명, 살아남아 성장할 수 있을지 아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 아이는 1968년 '프라하의 봄'처럼 억압될지 모릅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같이 분노에 찬 청소년기를 겪으면서 성장할지도 모릅니다. 시민사회가 전체주의로부터 나라를 해방시켰던 체코슬로바키아나 헝가리, 통일 독일에서처럼 광채를 빛내며 태어나 환영을 받다가 결국 둔감한 중산층 시민이 되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마르코스 일가의 도둑정치(kleptocracy)를 축출한 1986년 혁명 이후의 필리핀처럼 격동 속에서 성장할지 모릅니다. '1%'를 대신해 미국 중앙정보국(CIA)가 지원한 군사 쿠데타로 사라진 1953년 이란의 모하메드 모사데크 수상과 1954년 야코보 아르벤즈 과테말라 대통령, 1973년 살바도르 아옌데 칠레 대통령처럼 초기에 암살당할지도 모릅니다.

인류의 아이이건 역사의 아이이건, 우리는 이 아이가 무엇이 될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아이가 누구를 닮았는지를 생각해보면 아직 무엇인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가 무엇과 닮아 보이나요? 물론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의 동조 시위가 올해 전 세계에 걸쳐 태동했습니다. 그리고 아마 어떤 점에서는 1950년대 시민운동과도 비슷합니다.

1870년대 미국의 대공황 때 자발적인 전국적 봉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1877년 벌어진 철도 파업은 폭력적이었습니다. 반면에 '점령하라' 시위는 비폭력 정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1929년 시작된 대공황 때도 많은 극단주의 운동이 탄생했습니다. 여기엔 가족과 같은 유사점이 있습니다. 2003년 2월 15일 이라크 침공에 임박했을 때 전쟁에 반대해 7개 대륙(맞습니다, 남극 대륙을 포함해서요)에서 벌인 행진과 시위는 분명히 닮았습니다. 반 세계화 시위는 대모(代母)격입니다. 그리고 10살 더 먹은 형제도 있습니다.

9.11 테러에서 싹튼 공동체 정신

주코티 공원은 월스트리트에서 단 두 블록 떨어져 있습니다. 또 9.11 테러가 벌어진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한 블록 떨어져 있습니다. 그라운드 제로는 9.11 테러 당시 심각하게 손상을 입은 곳입니다.

올해 9월 21일 제 친구 마리나 시트린은 주코티 공원에서 제게 편지를 썼습니다. "매우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이곳에 있어. 부모님과 함께 온 아이부터 이 지역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 나이도 천차만별이야. 특히, 9.11 추모비를 지키는 보안 요원들 중 몇 명은 건설 노동자들처럼 점심을 먹으려 이곳에 들러 사람들과 수다를 떨고 있어."

9.11 테러 이후 모든 이슬람교도들이 테러리스트고 지하드 전사이며 자살폭탄범이라는 공포에 찬 환상을 갖고 있던 서방 국가들에게 10년 뒤 '아랍의 봄'이 그러한 환상을 깨는 비폭력 혁명으로서 9.11 테러의 대척점에 섰다면, 9.11 테러 10주년을 맞은 지 6일이 지나 시작된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10년 전 그날에 대해 주목할 만한 것은 모든 이들이 차분하고 아름답게 대처했다는 점입니다. 뉴욕 시민들은 서로 도우며 쌍둥이 빌딩의 계단 수십 개를 내려와 재앙을 벗어났습니다. 또 다른 시민들은 헌혈을 위해 줄을 섰고, 필사적으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했으며, 당시 뉴욕에서 새롭게 생겨난 공동체의 일원이 되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첼시 피어(뉴욕의 종합 스포츠 센터)에는 무료 급식과 의료지원, 그라운드 제로에서 일하는 이들을 위한 장비를 제공하는 커다란 식당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식당은 또 집을 잃은 이들을 위해 숙소를 찾는 것도 도와줬습니다. 공식적인 구호 활동도 아니었지만 현재 월스트리트 점령시위보다 더 자발적이었고 활동을 이끄는 주체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공식 지원 기구가 세워지면서 강제로 해체되었습니다. 당시 이 활동에 동참한 이들은 고통과 슬픔 속에서 민주주의 정신을 경험했고, 의미 있는 일을 찾는 즐거움을 누리면서 깊은 사회적 교감을 나눴습니다.

제가 몇 해 전 도시 재해의 역사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을 때 이처럼 예상치 못했던 사례를 계속해서 발견했습니다. 심지어 피해가 끔찍한 수준일 때에도 사람들이 도움을 주려고 모였다는 사실은 언제나 감동적이었습니다.

전 <지옥에서 세워진 천국>라는 책을 쓴 이후 계속해서 경제 위기라는 재앙이 비슷한 종류의 공동체를 만들어낼지 자문했었습니다. 2001년 아르헨티나 경제가 위기를 겪었을 때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뉴욕의 거리와 많은 다른 도시에서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를 점령하라' 시위에서 "이제 때가 됐다"라고 적힌 피켓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오래 걸렸습니다.

희망은 우리 안에 있다.

이 운동은 태동하기까지 3년이 지연됐습니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2001년 정부가 은행 계좌를 동결시키기 전부터 있었던 경제적 불만과 디폴트 위기에 즉각적으로 반응했습니다. 반면 미국 경제는 3년 전에 붕괴됐고, 당시에도 몇몇 분노한 이들이 있었지만 실제 반응은 미뤄졌거나 다른 방식으로 유인되었습니다.

당시 분노는 사실 우리를 위해 상황을 시정할 수 있는 대선 후보에 집중하는 강력한 풀뿌리 운동으로 나타났습니다. 아름다운 운동이었고, 희망에 가득 찬 운동이었습니다. 그 운동은 자신들의 후보를 백악관으로 보냈습니다. 그러고 나서 대통령은 자신이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떠나버렸습니다. 운동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그 운동은 기업과 싸워 기후변화 정책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운동은 한 명의 선출 공직자가 1000만 명의 시민, 또는 시민 사회 자체와 동등하다는 듯이 스스로 해체되어 버렸습니다. 그 운동은 나이와 인종을 초월했었습니다. 저는 이 운동이 정치가와 선거에 대한 환멸을 느낀 다음 망가져 버린 제도의 힘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기 위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 정확히 이 운동이 무엇을 닮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닯았다고 꼭 그처럼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기대하지 않았던 운동은 이제 막 한 달이 지났고 그 앞에 우리 누구도 알지 못하는 미래를 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운동은 당신에게 희망을 줄 것입니다.

     
/김봉규 기자(번역)

2011년 10월 17일 월요일

중국 가서는 그릇 위에 젓가락 놓지 마세요


[글로벌 에티켓이 영업 경쟁력] 러시아에서 노란색 꽃을 주면 죽음을 상징
벨기에·프랑스… 기업 로고 새긴 선물 싫어해… 기업마다 매너 교육 활발

동서식품 해외 영업직원들은 2년 년 전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을 공략하면서 홍차 마시는 연습을 집중적으로 했다. 카자흐스탄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각종 차에 가축의 젖을 넣어 마셔왔다는 점을 착안해 자사 커피 크림인 '프리마'를 수출하기로 하고 사전 현지 적응 훈련을 한 것이다. 식사 후 5분 커피 타임에 익숙해 있던 한국인들이 연거푸 차를 마시며 2~3시간씩 미팅을 가지는 게 힘들었지만 작년에만 690만달러(약 80억원) 수출 실적을 올리는 성과를 냈다.

이처럼 비즈니스 매너가 영업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제조 단계에서 그 나라 사람들의 기호에 맞는 제품을 만드는 것은 물론, 영업현장에서 뛰는 직원들이 현지 실정을 잘 파악하고 여기에 맞게 대응하는 것이 초기 시장 안착의 성패를 가른다는 것이다. 저명한 비즈니스 매너 전문가인 카리 헤이스태드 컬처 코치 인터내셔널 대표는 "보통 중소기업들이 해외 진출을 할 때 그 나라의 법규, 세금 등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다"면서 "그것은 문화적인 실수를 줄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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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대로 최근 국내외 기업에서는 해외 현지 문화를 잘 파악하는 것은 '문화 인센티브'라 부르며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직원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지난해부터 기내지에 '글로벌 비즈니스 에티켓' 칼럼을 고정적으로 싣고 고객과 직원들에게 현지인들의 습성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아시아나항공도 2009년 전사 차원에서 '글로벌 에티켓' 캠페인을 벌였고, 삼성전자는 2004년부터 직원들을 대상으로 글로벌 에티켓 캠페인을 벌인 데 이어 신입사원 교육에서도 에티켓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5월 중국·베트남 등 신흥 시장 공략을 위한 글로벌 에티켓 책자를 직원들에게 배포했다. 책자의 내용은 러시아·베트남·인도네시아 등 신흥 국가의 사업 파트너를 상대로 비즈니스 미팅이나 식사 자리를 가질 때 알아두면 유용한 매너법이다. 예를 들어 '중국에선 식사할 때 젓가락을 그릇 위에 올려놓으면 불운을 상징한다' '러시아에서 선물로 노란색 꽃을 주면 죽음을 상징하므로 좋지 않다'는 등의 내용이다.

롯데백화점 인도네시아사업부문 MD기획팀 정재훈 매니저는 이러한 지침 덕분에 계약을 좀 더 쉽게 따낼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는 영업을 할 땐 주로 영어를 사용하는데 인도네시아어(語)로 한두 마디씩 재미있게 던져주면 현지인들이 굉장히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예를 들면 미팅 도중 '마사시(정말이냐)' 혹은 '응각(아니다)' 등 기본적인 현지어를 추임새처럼 사용하면서 미팅 자리의 분위기가 좋아지거나 상대방이 호감을 갖는 경우가 많다는 것.

센스 있는 작은 선물은 부드러운 대화를 이끌기도 한다. 하지만 선물을 준다고 해서 상대가 무조건 좋아하는 건 아니다. 미국의 유명 매너 코치 전문가 킴벌리 로버츠에 따르면 일부 국가 사람들은 기업 로고가 새겨진 선물을 받는 걸 싫어한다고 한다. 대표적인 나라가 벨기에·프랑스·그리스·이탈리아·포르투갈과 스페인이다.

전문가들은 또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그 나라에 너무 흔한 물건이면 선물로 적합지 않다고 조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