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으로 합의된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그 사회의 미래를 어느정도 예측할 수 있다.
그 모습 속에 포함되는 것은 우리가 미래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것을 포함할 수 있다.
이상적인 정치의 모습, 경제적인 체계, 개인과 사회 집단의 역할과 상호 교류,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저변에서 이러한 체계를 유지하고, 찬양하거나 혹은 비난 하면서 더욱 발전된 미래를 꿈꾸게 하는 문화. 이 모든 것들이 우리들이 합의한 이상 사회 속에 포함되는 내용의 일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한국의 국민들이 잠정작으로 합의한 우리 사회의 이상적인 모습은 무엇일까?
입 박으로 표현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진리가 아니라는 불경의 한 구절처럼, 그것은 완성된 말로 표현하기 매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차라리 '화두'의 형태로 던지는 것이 더욱 그러한 합의의 진의에 더욱 가까이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지속가능한 경제적 성장과 발전'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생각해 보자.
우리는 최근 30년간 대통령 선거, 내각의 개각, 혹은 심지어는 기업의 CEO 의 교체에 있어서도 '경제위기의 극복', '기업 위기의 극복'을 주문처럼 외워왔다.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그것이 설사 무엇을 의미한다 할지라도)은 현대 한국 사회의 이념을 관통하는 공통의 키워드 였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우리 경제 주체들, 즉 사회와 기업과 개인이 번 수익을 충분히 투자에 활용하지 않고, 즉 소비하지 않고 과다 축적하기 시작하면서 경제발전의 수치는 둔화되기 시작했다. 물론 여기에는 많은 다른 경제 사회적 구성 요소들이 작동하였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는 사회적으로 돌아야 할 돈과 신용이 한 곳에 단순 축적되기 시작하면서, 결국은 전체 국가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가로막고, 사회적으로는 부의 재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됨으로서, 중산층이 몰락하며, 기업의 이윤 추구가 더 이상 경제발전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지 못하며, 결과적으로는 지속적인 불황과 경제위기를 재생산하게 하는 구조를 고착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누진세의 강화, 중산층의 수익 증대 방안 강구를 들고 있다. 이 또한 글로벌리 열린 구조의 현대에 있어서는 여러가지 문제를 안고 있는 답안이다.
아직 정답은 보이지 않는다. 진리를 바라봐야 할 우리의 눈과 귀를 가로막는 요소들이 너무나 많다.
그렇지만 최소한 우리는 우리가 희망하는 미래가 어떤 사회인지 꿈꿀수는 있다.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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