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29일 화요일

까페-경찰 전쟁, 3년차

까페-경찰 전쟁,  3년차
살다보면 참 재미나는 일을 만나는 수가 있다. 어제 일이다.
“어? 이것 봐라?”
함께 근무하는 근무자가 인터넷을 들여다 보다 놀란 목소리를 낸다.
-?
“어허, 원 세상에.”
-무슨 일 있어요?
걱정반 궁금반에 되묻는다.
“이런 일이!?”
그의 눈길은 컴퓨터 화면에서 떨어지질 않는다.
-뭐죠? 궁금해 죽겠네!
“글쎄, 우리가 며칠 전에 갔던 까페 있죠?”
-호텔 앞 어디어디 까페요?
“예예, 왜 브라질에서 왔다는 아줌마가 바- 스탠드 위에 올라가서 춤추고 난리법석 났던 까페 말입니다.”
-그런데요?
“그 까페 이야기가 ‘리베라숑’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났어요.”
-왜 춤추는 까페라고요?
“아휴!”
 한숨부터 몰아쉰다. 더 궁금하다. 그는 말한다.
“그 집이 벌써 몇 년전부터 행정재판에, 뻑- 하면 경찰이 무더기로 와서 난리법석을 치고 가는 까페였다네요.”
-어허?
“그래서 일하는 사람들이 춤추고 난리법석을 떨었나? 이판사판이라고?”
-그러고보니, 생각나는 일이 있기는 하군요. 몇 달 전, 낮시간에 커피를 마시러 갔는데, 세무서에서 나온 것 같은 여성이 한쪽 테이블에 앉아 산같이 자료를 쌓아놓고 꼼꼼이 계산기 두들겨 가며 조사를 하고 있더라고요.
“아하, 이 기사를 보니, 사회보장국 조사에, 경찰 조사에, 조사란 조사란 다 받고 있다는군요. 신문에 그렇게 났어요.”
-히야, 대단한 사람들이네. 우리 한국사람들 같으면 조사에 ‘조’짜만 나와도 와들와들일 터인데.
“인권변호사 같은 사람들이 재판에 재판을 계속한다는군요.”
-정말 대단하다! 왠만한 사람 같으면 문 닫고 가게 팔고 떠날텐데.
“좌파 일간지에 이렇게 대문짝만하게 기사가 실렸으니, 끝도 없는 전쟁이 대단했고, 대단하고, 장차에도 대단하겠어요.”
-그렇지만, 프랑스 땅에서 장삿꾼이 경찰 사회보장성 국세청 조사 압력을 이겨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지요.
“그럼 이 사람들은 아직 뜨거운 맛을 못 봐서 이 난리일까요?”
-아하, 프랑스는 모든게 느릿느릿하지요. 그러나 확실히 챙길 것을 챙기는데는 박사 위의 대박사님들이십니다. 더구나, 행정당국이 까페 주인에게 당하고 그대로 넘어간다? 어림도 없는 이야기죠.
“그럼 어떻게 될까요?”
-자고로, 장발장 이야기가 하늘에서 떨어졌겠습니까? 프랑스가 인권과 민주주의 나라임은 분명하죠. 그러나 사실 또 돋보기 가지고 까페 주인쪽을 행정적으로 들여다 보기 시작하면, 철퇴를 내릴 수 있을 ‘껀 수’들이 하늘의 별처럼 많은 거에요.
“어떻게 될까요? 이 사람들 친절하고, 순수하여 보이던데.”
-두고 볼 일이죠. 그러나 까페 주인이 행정당국을 손들게 하는 경우는 거의 불가능할겁니다. 물론 법적재판에서는 이길 수 있을런지도 모르죠. 그러나 첫 판에 경찰이나 행정당국이 재판에 졌다고 호락호락 ‘응, 그렇구나!’ 하고 물러나겠습니까.
“그럼, 어떻게 되죠?”
-재판에 재판에 재판을 거듭하겠죠. 그러나 몇 년 후, 최후의 승리자는 결국 행정당국이 되는 겁니다. 그게 장사하는 사람과 공직조직 전쟁의 원칙이죠.
-무섭네요.
“프랑스, 무서운 나라죠. 그래서 이만큼 이룬 면도 있고, 그러니까 또 빈민지역에 사는 이민 2세 3세들이 폭동수준의 난동을 벌이는 면도 있고요. 영원한 전쟁이죠.
자, 이제 2011년 3월7일자 ‘리베라시옹’ 인터넷 사회면에 대문짝하게 실린 기사의 내용을 훑어 요약하여 보자.
-피에르씨 부부는 몽마르트르의 명동 ‘아베스’(Abbesse) 거리에서 까페 겸 식당을 운영하는 영업자이다.
이 거리가 명품 거리로 변화함에 따라 외국인 관광객을 중심으로 한 고객이 많아, 장사 걱정은 안하는 사정이다.
-그러나 까페 주인으로서의 단순한 삶이 전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지옥같은 전쟁의 시작은 2년전인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벌어진 상황 등은 가게에 설치된 방법용 비데오 기록장치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어 오늘도 마치 한편의 영화처럼 그 내용을 훑어 볼 수 있다.
5월6일 새벽 2시26분, 떼로 몰려가던 젊은이들이 문을 두드려서 장사를 마치고 청소하던 손을 멈추고 문을 여니, “포도주 병따게 좀 빌려 달라”는 부탁이었다. ‘별 사람들도 다 있구나’, 하고 빌려 주는데, 이것이 몇 년을 끄는 행정재판의 실마리가 될 줄이야.
-그런데 하필이면 그 순간에 이 지역을 순찰하는 경찰차가 있었다. 이 모습을 목격한 경찰관 수명이 차에서 내려 몰려들며 관련법규 위반 딱지부터 떼었다. 죄목이 ‘까페 통금시간 위반 영업행위’이다.
이에 따라 8월중 9일간의 영업정지령이 떨어졌다. 행정당국과의 전쟁의 시작이다.
-까페 주인은 변호사를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했다.
변호사 : “증인이 있었는가?”
까페 주인 : 있다.
변호사 : 경찰이 증인 심문을 했는가?
까페 주인 : 안했다.
변호사 : 이는 법 위반이다.
이리하여 경찰과 까페 주인의 전쟁은 2라운드로 접어든다.
몇 달 후인 2009년 11월9일, 까페는 셔터를 내렸으나 거리 테라스에 10여명의 고객이 남은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때 나타난 순찰대는 본격적인 조사를 감행했다. 영업허가증 확인을 비롯한 갖가지 행정확인이다. 2장의 관련법 위반 경고장이 발부되는데, 첫째 죄목은 2번째의 영업시간 위반, 둘째는 소화기 유효기간 위반, 음료수 관련 위생법규 게시위반 이다. 상식적 기준으로 볼 때, 이는 가게하는 사람을 엿 먹이려는 의도가 뚜렷하다. 바꾸어서 설명하면, 이 까페 주인을 전과자로 몰아서 마치 장발쟝을 다루듯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는 셈이다.
이렇게해서 까페와 경찰의 전쟁은 3막으로 접어드는데...
3차는 좀 더 가혹하다.
느닷없이 나타난 수 명의 경찰관들은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허가증 조사 등이다. 이 까페가 전과자 수준을 넘어서 상습 전과자로 넘어갔음이 확인되는 내용이다.
일명 ‘카우보이’로 불리는 콧수염의 경찰관은 프랑스인 남편과 인도 아내의 체류증을 확인하면서 인종차별적 언사에 해당하는 막말을 하는 것이 비데오 카메라에 잡힌다(사후 재판과정에 이 장면이 제출되는 것은 기본이다).
“벌벌- 떨지 마슈! 당신이 인도사람이라고 당신 체류증을 뺏아 가면서 당신을 불법체류자로 모는 악덕 경찰관은 아니니 말요. 여기는 (당신 나라와는 차원이 다른) 프랑스 땅이란 말요. 알겠어?(반말)”
배알이 틀리고 울화가 치밀고, 서러움에 복바친 까페 주인 부부는 ‘경찰을 감시하는 경찰’로 불리는 ‘내무부 진상조사단’에 억울함을 호소하게 된다.
이 호소장에는 몽마르트르 상인협회 공산당 소속의 상원의원, 사회당 출신의 18구 시장 등이 서명이 첨부되었다.
본격적인 전쟁의 제 4막이다.
이 복잡해진 일개 가게주인과 경찰의 전쟁은 좀 더 높은 상급기관의 조사단계로 격상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발전하는데, (울화통에 치를 떠는) 경찰의 반격 또한 점입가경이다.
3번째 상황으로부터 몇 달이 지난 2010년 4월24일, 무려 5대의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까페에 들이 닥쳤다. 자그마치 20명의 정복 경찰관이 들이닥친 것이다. 대거방문의 명분은 지난번 조사의 후속조치로 15일간의 영업정지 명령이 떨어졌는데, 이를 무시하고 계속 영업한 죄목. 께페 주인은 파리 행정재판소장이 발부한 명령서를 경찰관에게 제시하며 계속 영업의 타당성을 주장했는데, 그 내용은 “(영업) 정지명령을 수일간 단축하여 모월모일부터는 영업을 재개할 수 있다”였다. 아마도 최종 판결문이 주인에게만 배달되고, 경찰에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점이었던 모양이다.
이 희한한 전쟁의 자초지종이 아마도 이 동네 주민들에게 잘 알려진 사건이었던 모양으로, 기사는 ‘까페 손님들의 야유속에 경찰관들이 수모를 당하며 철수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로서 전쟁의 끝인가?
아니다. 천만의 말씀.
이로부터 반년이 지난 6개월 후인 10월, 사회보장국 탈세조사반이 들이닥친다. 전쟁의 제 5막이다.
5막은 좀 더 가혹하고, 좀 더 광범위하게 큰 규모.
또 다시 자그마치 17명의 경찰관의 출동이다. 이번에는 해당구역 파출소장까지 나타난 것이다. 주인은 말한다.
“주방장 보조인이 인도인이다. 하필이면 이 친구가 그날 체류증을 갖고 오지 않았다. 그는 ‘집에 가면 (체류증과 노동허가증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지만, 경찰은 수갑을 채워 경찰서로 연행했다. 물론 그는 신분확인 후 다시 방면되었지만.
사회보장국의 탈세조사 결과는 벌과금 7.451 유로. 이를 명목으로 경찰은 다시 두 달간의 영업정지 행정명령을 내렸다.
한편 행정재판소는 11월18일, 까페 주인 피에르씨의 무죄를 판결했다.
그 이유중의 하나.
“불법노동자로 연행되었던 인도인에 대한 처사는 행정적 결격사항으로 분류될 실수가 있다. 그는 프랑스말을 못하고, 영어만 구사할 수 있는데, 경찰조사는 ‘언어불통을 사유로 연행했는데, 이는 관련법 위반이다. 통역을 대동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하는 법규를 어긴 상황이 분명하다’이다. 법원은 행정조사 때 통역인 배석을 명시하고 있다.
바야흐로 상황은 제 6막으로 접어들고 있다.
다음 재판일은 2011년 4월5일 예정. 까페 주인을 위한 변호사는 말한다.
“경찰은 분명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다. 이것이 이 재판의 초점이다. 2009년 11월9일 조사 때, 이 장면을 목격한 증인 10명을 법정에 내세울 것이다.”
그 귀추가 주목된다. (*)

2011년 3월 26일 토요일

주방용품 제조업체 '옥소' CEO 알렉스 리


입력 : 2011.03.26 03:06 / 수정 : 2011.03.26 09:19

"우리의 회의엔 배려가 없다 '틀렸다'말할 만큼 친하니까"

옥소(OXO) 본사는 뉴욕 맨해튼 첼시에 있다. 사무실에는 내부 공간을 나누는 벽이 없다. 전체가 하나로 뻥 뚫렸다. 책상에도 칸막이가 없다. 사무실 한쪽엔 넓은 주방이 있다. 주방용품을 깎고 다듬는 공작실도 보인다. 사무실을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직원 70명. 평균 나이 31세. 입사 전에 주방용품 업계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근무 시간 대부분은 여기저기 모여서 떠든다. 디자인으로 유명한 회사이지만 디자이너는 1명도 없다. 자체 공장이나 판매 조직도 없다. 그런데도 해마다 신제품 100종류를 세계 50개 국가에 내놓는다. 일을 어떻게 해낼까. 옥소의 알렉스 리(Alex Lee) 사장은 “옥소 직원들은 불편함을 찾아내고 해결하는 일에 집중한다. 디자인·생산·판매는 외부에 맡긴다”고 말했다.

소비자가 느끼지 못하는 불편함까지 잡아내라

리 사장을 지난 4일 시카고에서 만났다. 그는 해마다 시카고에서 열리는 가정용품 전시회 준비로 바빴다. 콜라 1잔과 쿠키 몇 개로 늦은 점심을 대신하며 인터뷰에 응했다.

그 는 홍콩에서 태어나 20세 때 미국에 왔다. 파슨스 디자인 스쿨과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공부했다. 옥소에 들어와 2년 만인 1996년 사장이 됐다. 그동안 회사 주인이 몇 번 바뀌었지만 15년째 사장 자리를 지키고 있다. 리 사장은 서둘렀다. 첫 질문을 꺼내기도 전에 "인터뷰 시간이 얼마나 걸리냐"고 물었다. 전시회장에 가서 직원들과 함께 부스(booth)를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는 인터뷰 내내 빠른 영어로 답했다.

발명하지 않는다… '발견'할 뿐

계산된 말만 난무하는 회의는 없다'
완전히 열린 대화'가 혁신의 원동력
우리가 숨겨진 불편함을 잡아내면
소비자는 그제야 '편리함을 만끽'한다




옥소의 첫 히트상품은 당근이나 감자의 껍질을 깎는 스위블 필러(swivel peeler). 관절염 환자도 편하게 잡을 수 있도록 큼직한 고무 손잡이를 달았다.
―옥소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옥소는 '해결사(solution company)'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어떤 물건에서든, 어떤 불편함이든 찾아내고 해결하는 회사다. 6세짜리 아이, 관절염 앓는 노인도 애먹지 않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든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드나.

"' 제법 괜찮은 물건(something pretty good)'이 이미 시장에 나와 있다. 그런데 사용자(user) 시각에서 보면 몇 가지 불편함이 있을 수 있다. 그 불편함을 옥소가 찾아내고 해결한다. 그러면 '아주 좋은 물건(really good product)'이 나온다. 더 많은 사람이 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제법 괜찮은 물건'에서 '아주 좋은 물건'이 된 사례를 든다면.

" 사람들은 주방용품을 사용하면서 불편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불편함이 있는데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옥소는 소비자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불편함까지 잡아낸다. 계량컵을 예로 들자. 옛날 계량컵은 컵의 옆면에 눈금이 있었다. 액체나 분말을 넣다가 눈금을 읽으려면 컵을 집어올리든지, 몸을 옆으로 기울여야 했다. 정량(定量)보다 많으면 덜어내고, 모자라면 채우는 일을 반복했다. 불편한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계량컵은 원래 그렇다'고 생각했다. 옥소가 처음으로 불편함을 찾아냈다. 해결하는 방법도 내놓았다. 계량컵 안쪽에 경사를 만들어 눈금을 새겼다. 선 채로 액체나 분말을 부으면서 눈금을 읽을 수 있게 했다. 한 번에 정량을 맞출 수 있게 됐다. 옥소가 불편함을 찾아내 주니까 그제서야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꼈다. 옥소가 불편함을 해결해 주니까 그제서야 사람들이 편리함을 누렸다."

―기존에 있던 물건을 조금 손보는 식이다. 창의성이 없는 것 아닌가.

" 세상에 없던 물건을 만들어내는 일은 발명이다. 발명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옥소는 발명하는 회사가 아니다. 옥소는 '혁신(innovation)'하는 회사다. 혁신은 '개선(improvement)'이다. 예전에 주방용 집게는 물건을 집을 때마다 손아귀에 힘을 잔뜩 줘야 했다. 집게의 두 팔을 모아주는 고정장치를 옥소가 처음으로 달았다. 다른 회사들이 다 따라왔다. 옥소가 주방용품 산업에서 새로운 표준(standard)을 세웠다. 창의성이 뛰어난 것 아닌가."

―'불편함을 찾아내는 작업'은 어떻게 하나.

" 먼저 옥소가 만들고 싶은 상품군(群)을 정한다. 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상품 5개를 추린다. 이제 불편함을 찾아내는 작업에 들어간다. 모든 제품을 사용자 시각에서 접근한다. 사용자가 아닌 사람은 불편함을 찾아낼 수 없다. 가장 열정적인 사용자라야 불편함도 가장 열정적으로 찾아낼 수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열정적인 사용자는 옥소 직원들이다. 어떤 물건이든 실제로 사용해 보면서 불편함이 무엇인지 찾아낸다. 최근 5년간 옥소 직원들이 아기를 25명 낳았다. 어느 날 갑자기 사무실 여기저기에 '성난 엄마들(angry moms)'이 나타났다. '이 유아용품은 이런 점이 불편해' '저 용품은 저런 점이 불편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아용품의 가장 열정적인 사용자는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이다. 그들이 등장한 덕분에 옥소가 유아용품 시장에도 진출하게 됐다."

―옥소가 일하는 방식은.

"나는 '완전히 열린 대화(totally open dialogue)'를 믿는다. 옥소 신입사원은 처음 회의에 들어오면 조금 불편할 것이다. 모두가 너무 직설적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옥소가 개발한 제품이라도 나쁜 물건이라고 생각하면 나쁜 물건이라고 해버린다. 개인에 대한 배려는 안 한다. 업무다. 나는 기업의 이사회 같은 회의가 제일 싫다. 참석자 모두가 정치적으로 계산된 말만 한다. 그러다 휴식 시간에 화장실에서 만나면 서로에게 '이러다가 회사 말아먹는 거 아냐'라고 한다. 나는 '회의 때 말하지 그랬어'라고 따진다. 옥소에 그런 회의는 없다."

―'완전히 열린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나.

" 옥소 사무실엔 벽도 없고, 책상 칸막이도 없다. 언제, 어디서든 완전히 열린 대화가 이뤄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상대방에게 '당신이 틀렸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서로 신뢰를 충분히 쌓아야 한다. 그래서 직원들 간에 모임을 많이 만들게 한다. 피자 모임, 샐러드 모임, 수프 모임…. 뭐든지 좋다. 여름여행, 스키여행도 같이 보낸다. 일하면서 서로에게 입힌 상처를 보듬어 주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렇게 하면서 직원들이 열정을 유지할 수 있다. 그들이 호기심과 창조성을 잃으면 옥소는 끝이다."


옥소 직원들의 업무는 불편함을 찾아내고 해결하는 것이다. 벽도 칸막이도 없는 사무실 곳곳에서 격식 없는 회의가 수시로 열린다.
고인 물은 썩는다… 온 세상의 아이디어를 모아라

옥소는 디자인을 '생명줄(life line)'로 생각한다. 옥소가 추구하는 편리함과 기능성을 함께 담는 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내에 디자이너와 디자인 부서를 둔 적이 없다. 알렉스는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고 했다.

―디자이너, 디자인 부서를 안 두는 이유는.

" 한 세대 전에는 모든 회사가 디자인 부서를 회사 안에 두고 있었다. 회사 밖에서는 멋진 것(cool thing)이 안 나온다고 생각했다. 그런 폐쇄적인 운영이 혁신을 막았다.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또 회사 안에 디자인 부서를 두면 쉽게 따먹을 수 있는 일만 자기들이 하고, 어렵고 힘든 일은 바깥에 떠넘기는 경향이 있다. 이런 식으론 안 된다. 고인 물은 썩는다."

―그래서 어떻게 하나.

"외부 디자인 회사 9곳을 쓰고 있다. 7곳은 미국 회사, 2곳은 일본 회사다."

―외부 회사가 어떻게 옥소가 원하는 디자인을 내놓나.

" 디자인은 옥소의 핵심역량(core competency)이다. 외부 회사에 그냥 맡기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옥소의 역할은 관리(management)와 통제(control)다. 3단계를 거친다. 첫째 어느 디자인회사의 어느 디자이너가 어느 제품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한다. 둘째 옥소의 디자인 철학에 동의하는 회사에만 일을 맡긴다. 셋째 그 디자인 회사에도 옥소가 하는 '불편함을 찾아내고 해결하는 작업'을 똑같이 시킨다. 가끔은 옥소가 몰랐던 불편함을 찾아내고 해결하는 디자인 회사도 있다. 옥소의 실수가 확인될 때도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옥소가 원하는 디자인, 그 이상의 디자인이 나올 수 있다. 자기 집 지하실에 틀어박혀 혼자서 뭔가를 만들어 내던 시절은 지나갔다. 온 세상의 생각을 불러들여야 하는 시대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돈을 주고 사야 한다."

―디자인을 아웃소싱(outsourcing)할 때 장점은.

"여러 가지 상품을 한꺼번에 추진할 수 있다. 9개 회사에 1개씩만 맡겨도 동시에 9개가 돌아간다. 1~2개는 홈런을 친다. 5~6개는 괜찮은 수익을 낸다. 물론 1~2개는 햇빛을 못 보고 사라질 수도 있다. 한 번에 여러 개를 돌려야 대박을 터뜨릴 기회도 생긴다."

 

"교환·환불 요구는 평생고객 만들 기회"

모든 옥소 제품의 원산지는 중국이다. "값싼 공장을 찾아 중국으로 간 거냐"고 물었다. 알렉스는 "좋은 품질을 찾아서 간 거다"라고 답했다. 뜻밖이었다.

―'중국=값싸고 질 낮은 물건' 공식을 거부하나.

"그렇다. 애플의 아이패드, 아이폰도 중국에서 만들지만 품질이 낮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중국에서는 합당한 가격만 치르면 어떤 품질의 물건도 만들 수 있다. 중국을 비난할 이유가 없다."

―옥소가 중국에서 제품을 만드니까 그렇게 말하는 것 아닌가.

" 그렇지 않다. 중국 바로 다음에 2등이라고 할 만한 나라도 없다. 노동집약적 제품의 경우는 그렇다. 옥소가 요구하는 품질의 주방용품을 만들 수 있는 공장이 중국에는 5000개 있다. 중국보다 임금이 싼 베트남에는 그런 공장이 127개뿐이다. 중국의 잠재적 경쟁자로 불리는 인도에는 그런 공장이 고작 50개다.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릴 만한 나라들의 상황이 이렇다. 나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중국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같은 비용으로 최고 품질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옥소의 감자깎기 칼은 8달러다. 편의점에서 파는 감자깎기 칼은 2달러다. 모두 중국에서 만들어진 제품이다. 옥소 제품이 너무 비싼 것 아닌가.

" 옥소는 고가품이 아니다. 감자 으깨는 도구를 보자. 할인점에서 파는 물건은 4달러, 옥소 물건은 8달러다. 할인점 물건은 6개월 지나면 못 쓴다. 그런데 독일제는 64달러다. 고가품은 이런 거다. 옥소는 가능한 한 가장 낮은 가격을 잡으려고 한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고(usable),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구입할 수 있는(affordable)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가격을 낮추기 위해 품질을 떨어뜨릴 생각은 전혀 없다."

―옥소의 정책 중에 '만족 보장(satisfaction guarantee)'이 있다. 상품에 하자가 없어도 고객에게 불만이 있으면 교환·환불해 준다는 것인데.

" 옥소는 불만이 있는 고객이 나오면 평생 고객으로 뒤바꾸는 기회로 삼는다. 어느 블로그에 '옥소 수세미를 5달러 주고 사서 2~3년을 쓰니까 잘 문질러지지 않았다. 옥소에 전화했더니 아무 말 없이 새 물건을 보내줬다'는 이야기가 올라왔다. 조회 건수가 2만건이 넘었다. '나도 그런 경험 있다' '옥소는 좋은 회사다'는 댓글이 나왔다. 고객이 불만이 있다고 하면 그걸 다른 방향으로 돌려서 '이 회사 참 괜찮구나'하는 마음이 들도록 하면 정말 충성도 높은 고객을 갖게 된다."

위험에 도전하라. 실패한 사람을 벌하지 마라

옥소는 주방용품에서 욕실용품·정원용품·사무용품·의료용품·유아용품으로 사업분야를 넓혀왔다. 미국 시장만 상대하던 회사가 세계 50개 국가로 진출했다. 알렉스는 "새로운 도전을 멈추면 안 된다"고 말했다.

―옥소의 사장을 15년째 하고 있다. 경영 철학이 있다면.

" 위험이 있더라도 과감하게 도전하도록 모든 구성원을 격려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실패는 예상해야 한다. 10발을 쏘면 몇 발은 완전히 빗나갈 수도 있다. 실패한 사람을 벌주면 안 된다. 언제나 새로운 일을 찾고,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회사가 돼야 한다. 사람들에게 '옥소에서 일하고 싶다'는 흥분을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옥소는 어떤 사람을 직원으로 뽑고 있나.

" 주방용품 업계에 있는 사람들은 뽑지 않는 편이다. 특정한 업계에 경력이 편중된 사람은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똑똑한 사람들'을 찾는다. 옥소는 불편함이 무엇인지 제대로 질문하고, 해결책은 무엇인지 제대로 대답하는 회사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똑똑한 사람은 무엇이든 배울 수 있다. 옥소에는 다양한 전공, 다양한 인종의 남녀가 고루 섞여 있다."

―직원을 뽑을 때 가장 주목하는 특성은.

"열정(passion). 옥소에 들어와 무언가 해보고 싶다는 열정이다."

―당신은 어떻게 일하나.

"내가 직원들에게 요구하는 대로 나도 일한다. '항상 새로운 도전에 나서라' '항상 새로운 위험에 맞서라'. 사람들을 편리하게 해주는 물건을 만들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