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3일 일요일

인간의 품격 (The road to character) - 뉴딜의 막후 후원자 프랜시스 퍼킨스 편에서


-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우리 시대 사람들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간다.  자기 탐구에서 시작해 자기 성취로 끝나는 다시 말해 자기에서 시작해 자기로 끝나는 방식이다.  이 때 삶은 일련의 개인적 선택으로 결정된다. 그러나 프랜시스 퍼킨스는 이와 다른, 과거에는 더 흔히 적용되던 방식으로 삶의 목적을 찾았다.  자신이 삶에서 내게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나를 둘러싼 이 상황은 내게 무엇을 하라고 요구하는가?

- 이러한 세계상 안에서 우리 삶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삶이 우리를 부르고 소명을 제시한다.

- 타고난 자질과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쁨, 그리고 이 세상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 이 둘의 접점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 프레데릭 뷰크너-

- 우리가 삶에서 무엇을 기대하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느냐다.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기를 엄추고, 대신 우리 스스로를 날마다, 시시각각 삶이 던지는 질문을 받는 존재로 생각해야 한다." - 빅터 프랭클 -

- 우리에게는 삶을 내적 성취를 이루는 방향으로 변화시킴으로써 그런 경험을 승기의 경험으로 만들 능력이 있다.

- "삶의 이유를 아는 사람은 거의 모든 삶의 방식을 견딜 수 있다." - 프레드리히 니체

- "천사들은 무한한 영광에 대한 영원한 묵상에 빠져 있다."

- 자기에게 주어진 소명을 알아차리는 능력은 눈과 귀의 상태에 달려있다.  자신이 처한 삶의 상황이 주는 임무를 이해할 만큼 민감해야 하는 것이다.  유대교의 구전 율법 미슈나에서 가르치듯 "일을  완수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그 일을 시작하지 않을 자유도 없다."

- 천직은 현재 경제학자들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방식처럼 자신의 욕망이나 필요를 성취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행복'이라는 것이 기분 좋고, 유쾌한 경험을 하고, 싸움과 고통을 피하는 걸 의미한다면, 천직은 그런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다.  천직에 몸담을 사람은 자기 앞에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도구가 된다.

- 솔제니친 : 나는 부정한 세력을 치도록 날카롭게 만들어진 칼, 그들을 쪼개고 해체시키기 위해 주문을 건 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천직을 찾은 사람은 의기소침해 지지 않는다. ..  가장 전형적으로 느끼는 감정은 기쁨이다.

- 양키 전통 :  근검절약하고 성실하고 가혹할 정도로 정직한 가정교육

- 오늘날 우리는 자녀들에게 그들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를 거듭 강조하지만, 당시에는 아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한계와 약점을 직면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었다.

-양키들에게는 사회적 보수주의라고 부를 만한 경향과 정치적 리버럴리즘이 결합되어 있었다.  개인적인 삶은 전통적이고 엄격했지만 공동체적 연민과 정부의 조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각 개인이 '선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집단적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 (마운트 홀 요크 대학에서는) 퍼킨스가 타고난 자신의 약점을 직면하도록 했다.  그녀를 내리 누른 것이다.  그런 다음 그것을 이겨내고 위로, 밖으로 뻗어 나갈 수 있게 가르쳤다.

- 헐 하우스의 사회복지사들은 스스로는 낮추고 존재감을 줄이도록 요구받았다.  동정심을 억제하고, 각 개인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조사하는 동안 과학적 인내심을 발휘하는 것도 필수였다.  그들은 실질적 조언자가 되어야 했다.

- 도움을 받는 사람이 내린 결정을 자신의 의견으로 압도하지 않는 태도가 요구됐다.

- 자신이 내적으로 약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내적 장악력을 늦추면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릴 것이라는 의미다.

- 반대파가 악의적인 공격을 퍼부으면 그녀는 질문을 다시 해 달라고 요청했다.  누구도 비열하고 천박한 발언을 두 번 반복하기는 어려울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 퍼킨스는 자신의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 필연성이 느껴지는 부름에 응했을 뿐이다. 소명을 끌어안는 사람은 자기실현을 위한 지름길을 택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기꺼이 내려놓고, 자신을 잊고자 하고, 자신을 침잠시킴으로써 오히려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아를 성취할 수 있는 목표를 찾는다.  그런 소명에는 거의 대부분 한 사람의 인생을 초월하는 임무가 걸려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자신을 역사적 과정에 던져 넣어야 한다.  그들은 역사적 책무를 다하는 헌신 속에서 그 일원이 될 자격을 얻음으로써 삶의 덧없음을 보상 받는다.



1952 라인홀드 니버

해낼 가치가 있는 것 중 일생 동안 완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희망과 구원이 필요하다.  진실하고 아름답고 선한 것 중 그 어떤 것도 당장의 역사적 문맥 안에서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믿음의 구원이 필요하다.  아무리 선하고 도덕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혼자서 그것을 이루어 낼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사랑의 구원이 필요하다.   어떤 덕행도 친구나 적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보는 것 만큼 덕스럽지 않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사랑의 마지막 형태, 즉 용서와 구원이 필요하다.